"자기혐오가 심해요." ㅣ 20대, 우울/성격/트라우마, 50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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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21 10:35 5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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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가 심해요." 20대, 우울/성격/트라우마, 50회기
* 이 글은 박한빛 상담사가 타 기관에 재직할 당시 상담을 진행했던 내담자가 쓴 상담수기로,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19년 상담후기 부문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한 상담수기입니다.
수기를 작성하고자 기억을 더듬으니,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노래를 틀어놓고, 천천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글을 쓰고자 합니다.
저는 올해로 21살이 되었습니다. 올해로 약 2년 째 상담을 받고 있으며, 그 모든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보석 같은 시간이기에 그 중 몇 개를 조심히 골라 수기를 작성해봅니다.
저는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저희 가정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조현병을 앓고 계셨으며, 저를 출산하신 후 입퇴원을 반복하시다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는 해부터는 퇴원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공장직에 종사하셨으며, 사고로 다리에 인공관절을 심으셨고, 평생 다리를 절게 되셨습니다. 저는 그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난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어머니의 면회 및 병간호를 아버지와 함께하며, 각종 고난을 버텨내듯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극심한 왕따를 당해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았고, 중학교 때엔 어머니의 병세 악화와 아버지의 몸 상태 악화로, 스트레스성 안면마비가 오기도 했으며. 고등학교에 들어서선 빈곤한 가정이 걱정되어 진로 때문에 내적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아버지께서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으셨고, 아버지의 병수발과 어머니의 면회를 번갈아 하며 고등학교 2학년을 마쳤습니다. 수술은 하셨지만 암은 얼마 가지 않아 재발하였고, 뒤늦게 검사를 진행했을 때 의사선생님은 제게 아버지가 3개월도 살지 못하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새로운 반에 배정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암세포는 무서운 속도로 아버지의 몸 곳곳에 퍼져갔고, 이윽고 뇌수에 전이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아버지께선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불가능하게 되셨고, 분노를 쉬이 조절하지 못하시고, 제가 숨을 쉰다는 이유로, 말을 한다는 이유로 저를 향한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6월. 아버지는 제 눈 앞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고 홀로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의정부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박한빛 선생님을 만나 상담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선생님께 처음 제 사정을 전부 말하는 데에만 수 주가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 몇 주간의 기억은 제게 무척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생님께서 제가 제 사정들을 말씀드릴 때, 따라 눈물을 흘려주시고, 손을 잡아주시고, 울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를 제외하곤 울지 못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낯선 친척들 사이에서 늘 울지 말라고 혼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엔, 제가 울면 아버지는 늘 “아빠 속상하게 왜 울고 그래” 라며 아버지도 눈물을 터트리셨고,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간 조현병 탓에 저를 무척 미워하게 되신 어머니께선 욕을 하시며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 라며 어머니 또한 마주 울음을 터트리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울음을 참는 삶을 살아오다가, 선생님께서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셨을 때. 저는 처음으로 서럽게 울었습니다. 이렇게 울어도 되는구나, 이렇게 울 수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크게 울었습니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우는 제게, 선생님은 내내 손을 잡아주셨고, 토닥여주셨고, 제 앞에서 함께 눈물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그 경험 이후로 우는 법을 차차 배워갔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 큰 도움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미친 듯이 살아남기 바빴던 삶이었다는 걸 자각조차 못했던 저는, 선생님 덕분에 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습니다. 수 백명의 전교생이 저를 따돌렸고, 저는 지금도 그 시절의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스스로 잊어버린 것이라고 선생님께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무척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선 그런 제 상처에 부드러운 방법으로 접근해주셨습니다. 제가 일어서고, 나아가기 위해선 그 시절의 기억을 들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저는 저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셨던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이기에 기꺼이 납득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을 꺼내기 위해 기억을 되살리며, 몸을 떨면 안아주시고,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땐 숨을 쉴 수 있게끔 호흡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도움 끝에, 저조차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선생님과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정말 선생님의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자존감이 낮고 자기혐오가 심해서 지나가는 길에 매장 창문에 비친 저 자신을 보는 게 두려워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걸었고, 거울을 본 적은 손에 꼽았었는데 이것은 왕따를 당했던 초등학교 시절, 주변의 친구들의 바라봤던 모욕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있던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선 제게 “너를 괴롭혔던 아이들의 시선이 아니라, 너 자신의 시선으로 너를 봐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날, 처음으로 저 스스로의 목소리라는 것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죽이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선생님과 함께 죽여 왔던 스스로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상담을 시작하고 나서 수많은 변화를 선생님 덕분에, 선생님과 함께 빚어냈습니다. 이걸 먹고 죽는다면 오히려 감사하지, 라며 상한 걸 그대로 먹었던 버릇이 없어졌으며. ‘나는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라서 그래. 천성이 글러먹은 사람이라서 그래’ 라고 스스로를 포기하는 태도도 고치게 되었습니다. 힘들어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과거를 떨치고 ‘아, 나는 불쌍했고, 나는 힘들었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리를 지나갈 때, 창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어머니의 병동에 갈 때, 두려워해도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언제나 제 상담 선생님이신 박한빛 선생님이 계셔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제 이름 세 글자를 쓰는 것이 두렵고 혐오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올해로 21살이 되었으며, 저는 저 같은 아이들을 도와주는, 박한빛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학과’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남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있고, 지금도 그 직업을 위해 나날이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폭풍 같던 고3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무사히 입학했고. 대학교 근처에 방을 구해 혼자이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목숨을 끊는 것이 목표였으나, 저는 상담 덕분에 그 생각을 바꾸어 지금 이 순간에도 한 걸음씩 삶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 노래를 틀고 시작했다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며, 저 자신을 위해 노래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정말로 좋아하고 마음에 와 닿는 노래인, 이 글을 쓰는 내내 들었던 “볼 빨간 사춘기-나의 사춘기에게”를 추천하며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